부모님이 피난민이라 친척이 없어 묘지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공원묘지를 가 보았습니다. 물론 어릴 적 산동네의 공동묘지에서 놀았던 기억은 있지만 특정인의 죽음을 아쉬워하면서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무덤 앞에 놓여 있는 알록달록한 꽃들을 보면서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관리를 하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만 하나둘 확인해 보니 그것들은 거의 다 生花(생화)가 아닌 “造花(조화)”였던 것입니다. 말이 좋아 조화지 가짜 꽃인 셈이지요. 그들의 정성조차 갑자기 가짜처럼 느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굳이 이해를 해보자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죽은 무덤이 휑한 것보다 꽃이라도 하나 있으면 보기도 좋고 살아 있는 자의 정성이 보이는 듯 하지요. 현실적으로 생화를 두기에는 경제적으로나 며칠도 못되어 시들어(?) 버리는 문제도 있고요. 그러니 생화가 아닌 인공으로 만든 조화를 두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고, 비바람이 치더라도 시들지 않고 무덤을 잘 장식(?) 해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예배당에도 가짜 꽃과 나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단과 교회당을 장식하고 보는 사람 기분 좋게 하자고 꽃과 나무들을 장식하는데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우니 가짜가 등장한 것이지요. 하지만 교회는 무덤이 아닙니다. 생명을 다루는 곳입니다. 죽었던 것을 살리면서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루고 특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집에 造花 장식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식이 어려우면 안하고 깨끗하게 청소만 잘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지 사람보기에 좋으라고 죽은 것, 가짜를, 진짜의 자리에 대치하는 것은 교회의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노정각 목사